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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광화문 횡단보도를 복원했나, 시민의 힘이 만든 쾌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횡단보도가 단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자동차는 땅 위로 편하게 다니고, 사람들은 가까운 목적지를 두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어떤 배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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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해외에 파견된 한국교통연구원의 한 연구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한국의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내용을 사례연구로 싣고자 하는데 그것을 상징할 수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통 분야 모범사례를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들 가운데, 2015년에 발간된 <The Improvement of Pedestrian Environment in Korea: Polices and Achievements(한국의 보행환경 개선)>라는 책자를 소개하는 맥락이었다. 이 책의 편저자인 나에게 메일을 준 것이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달려간 곳은 당연히 광화문이다. 지금 ADB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사진은 이래서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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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 다수의 보행자가 활보하는 광화문 횡단보도.  사통팔달 연결되어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횡단보도가 단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자동차는 땅 위로 편하게 다니고, 사람들은 가까운 목적지를 두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어떤 배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 이충일 기자의 취재에 의하면 광화문 횡단보도가 지하도로 바뀐 것은 지난 1966년의 일이다. “1966년, 광화문은 우리 교통사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광화문 지하보도 준공이다. 지금 생각하면 차에 밀려 사람이 땅속으로 쫓겨간 형국이지만 당시의 의미는 달랐다. 서울시사(市史)편찬위원회가 쓴 서울지명사전은 '보행자는 안전하게 건널 수 있고, 차량은 신호대기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성장과 효율의 상징이었다. 이후 전국에 지하보도와 육교가 앞다투어 건설됐다. 그러면서 그만큼의 횡단보도가 사라졌다. 잇단 지하철 건설로 생긴 역(驛)의 지하도들도 횡단보도 지우기를 가속화시켰다.”(조선일보, 2018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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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시민단체인 녹색교통운동이 만들어져 <녹색교통>이라는 잡지를 펴냈는데, 그 창간호에 실린 광화문의 모습이다. 1999년 횡단보도가 복원될 때까지 33년 동안 보행권 침해와 장애인 이동권 봉쇄가 자행된 것이다. 이런 자동차 모시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였고, 전문가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십여 차례 방송을 통해 문제 제기를 열심히 하고 신문기사 형식으로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언론을 통한 문제 제기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시민의 힘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보자! 

서울에서 시급히 횡단보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광화문과 신촌로터리 등 10개 지점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서명지를 만들어 거리로 나섰다. 서명을 받은 곳은 사실은 광화문이 아니라 신촌로터리 홍익서점 앞이었다. 이곳은 10미터 밖에 안되는 코앞의 도로를 건너기 위해 100미터 이상을 지하로 건너도록 한, 어처구니없는 그런 곳이었기에 호응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1998년 9월 "이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주세요"라는 조그마한 플래카드를 들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몇 시간 만에 2천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서명지를 6개 단체 명의로 경찰청과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접수하였다.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일보 1998년 9월 21일자 지평선에서 문창재 논설위원은 이 소식을 다루면서 "차 다니기 좋게 하려고 사람을 땅속으로 쫓아버리는 도시는 한국말고 어느 나라에도 없다. 걷고 싶은 거리는 그만두고 걸을 수 있는 도시, 걷기 편한 도시에 살아보고 싶다."라고 썼다. 

다음은 1998년 9월 16일자 경향신문의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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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개월 후인 1998년 12월 23일 서울시는 우리가 요청한 10개 지점 가운데 광화문과 신촌 등 6개 지점을 횡단보도 설치 가능 지역으로 판단해 왔다고 밝히면서 1999년 상반기 중에 횡단보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광화문 횡단보도 복원은 이렇듯 시민들의 힘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횡단보도가 복원된 직후인 1999년 4월 15일 녹색교통운동은 “시민의 힘으로 만든 횡단보도입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자축의 안내문을 복원된 횡단보도에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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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횡단보도는 보행권 회복의 상징이자, 교통개혁의 상징이다. 자동차 위주로 운영되던 도로공간을 보행자에게 친근한 도로공간을 만들자는 보행권 회복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교통을 바꿔보겠다는 시대정신을 실행에 옮긴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광화문 횡단보도의 복원은 당초 불가능하게 보였다.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처럼 보였다. 하지만 옳은 것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주장은 마침내 승리한다. 그것이 시민의 힘이다. 서울 광화문의 횡단보도가 복원되었을 때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교통정체가 심해졌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설령 자동차가 약간 불편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과 자동차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더 목소리를 높였다.

고정관념과 싸우는 것은 힘겨운 노력이다. 새로운 변화와 방향성을 거부하는 고정관념을 이겨낼 새로운 힘, 결국 시민의 힘을 만들어야 했다. 광화문의 변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도 고정관념과 싸워야 할 곳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시민의 힘을 조직하라.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대안이라는 것은 횡단보도만이 아닐 것이다. 보행자들이 당당함을 되찾았기에 우리의 도시는 예전보다는 더 살만한 공간으로 바뀔 수 있었다. 도시의 도시다움을 찾는 일은 이렇듯 시민의 힘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이다.

임삼진, 그린코리아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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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거나, 보행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 횡단보도 설치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주세요. 문제 해결을 도와드리겠습니다.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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